[수필] 노영희-빨간 등대
[수필] 노영희-빨간 등대
  • 노영희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승인 2021.09.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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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영희 (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경기도민일보=노영희 칼럼]

"와, 바다다"

처음 본 것처럼 외쳤다. 앞서서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와 멀리 이쪽으로 오는 짙푸른 파도를 보았다. 첫사랑을 만난 듯 떨리는 마음으로 속삭이듯 안녕하였다. 하늘은 맑았고 더웠다. 

해안가로 접어들면서 앞이 확 트이며 바다가 보였다. 하얀 모래사장과 사람들 소나무 숲을 지나쳤다. 더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이 순간 파도로 밀려왔다. 첫 번째 바다를 지나쳤다. 가자, 더 멋진 바다로.

뚱뚱하고 커다란 삼발이 같은 테트라포드 블록 방파제 길 끝에 빨간 등대가 서있다. 여름임을 알려주는 듯 열기를 품은 콘크리트길은 뜨거웠다.

빨간 등대는 햇빛에 눈이 부셔 검게 보였다. 파란 바다 위에 배처럼 떠보였던 등대는 무겁고 튼튼했다. 거친 파도와 바람에 끄떡하지 않을 것이다.

밤바다를 보았다. 밤하늘 저 멀리 달이 뜨기 시작하고 반짝이는 별들이 내려와 철썩철썩 몸을 씻으며 머물렀다. 잠들지 못하는 바다와 나는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등대는 길고 긴 빛을 천천히 내려 바다를 쓰다듬었다. 고단한 하루를 잠재우듯. 

밤 낚시꾼들이 침묵을 깨고 소리쳤다. 대어를 낚은 모양이다. 푸드득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우체통 같은 빨간 등대는 칠흑 같은 바다에 빠르게 번개 같은 길고 긴 빛줄기를 신호처럼 보냈다. 잠깐잠깐 생기를 찾는 바다. 

지금은 등대지기도 없고 파란 불빛을 뿜어내며 바다를 지키고 배를 지키고 있는 등대지만, 바다 하면 떠올린 것은 하얀 등대였다. 등대 위로 갈매기가 날고 비릿한 바닷바람이 지나가는, 눈을 감으면 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있었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등대, 밤이면 환하게 바다를 밝히고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어주던 등대다. 하얀 등대는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빨간색으로 태어나 짙푸른 바다의 상징이 되었다. 바다가 보고 싶었던 어린 시절 바다는 꿈이었고 등대는 빛이었다. 마음이 쓸쓸하다거나 힘들다고 느낄 때 제일 눈에 밟히는 것은 바다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보면 “바다다”하고 소리 높여 바다를 친구 이름처럼 부르나보다. 

방파제 아래선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람들도 서늘해진 빨간 등대와 밤바다를 떠나기 시작했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알베르 까뮈- 잎이 꽃이 되는 깊은 가을 다시 올게. 가을이 깊으면 내 마음도 깊어지겠지. 안녕, 안녕. 
 

경기도민일보, KG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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