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호태 시인/한반도 소나타-돈키호태 유람 61
[기고] 우호태 시인/한반도 소나타-돈키호태 유람 61
  • 우호태 시인
  • 승인 2021.02.25 13:54
  • 댓글 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ㆍ1절 102주년을 맞아

호새:“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돈키:크고 엄숙하게 불러야지. “대한독립만세 …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부를 때마다 이 노래(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의 의미가 새로워.

호새:1919년 3월 1일 그동안의 설움이 터져 나온 거네요?

돈키:1905년 을사조약 후 황성신문 주간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 논제가 세상을 울렸어. 1909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비롯해 만주, 북간도, 상하이, 동경, 미국 등지에서 선각자들의 날선 발걸음도 분주했거든. 이런 흐름에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 각 종교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힘을 보탰어. 마침내 민족대표 33인이 파고다공원(태화관)에 모여 천도교 대표 손병희 선생의 독립선언문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에 만세소리가 물결을 이루었지.

호새:이웃나라 일본과의 갈등은 지정학적 문제인가요?

돈키:지난 역사를 살피면 큰 물줄기로 그렇다고 봐야지. 우선은 먹고 사는 문제야. 다음으로 당시를 다스리던 리더와 참모들의 품성도 곁들여야겠지.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 이즘 이르도록 귀에 익은 사건들-왜구약탈, 삼포왜란, 대마도 정벌, 임진ㆍ정유왜란, 강화도조약, 한일합병조약, 3ㆍ1운동, 이승만 평화선 선언, 한일기본협약, 위안부협약, 독도 등 아픔과 갈등이 끊임없잖아. 

호새: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나 봐요?

돈키:동물세계의 전제야. 인간사회도 자유, 평등의 가치를 존중하며 평화와 사랑이란 말로 갈등과 싸움을 최소화하지만 현대정치의 대부 격인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국제사회 현실엔 정치는 외교가 아닌 힘이라고 했어. 당시 힘이 없어 국제사회에 얼굴을 내밀 수 없는 조국의 현실에 봉오동 전투나 청산리 전투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서일, 김좌진, 나중소, 김규식, 이범석… 익히 알려진 지휘부들이 이끄는 여러 연합부대의 대첩과 윤봉길 의사 홍구공원 의거 등 지사들의 활동이 그나마 어둠속 국민들의 가슴에 보름달을 띄웠어.

호새:민족자결의 의미를 곱씹어야 할 것 같아요.

돈키:1917년 발발한 2차 세계대전 후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 원칙인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3ㆍ1운동에 앞서 일어난 동경에서의 2ㆍ8독립선언이나 이어 중국의 5ㆍ4운동, 인도, 이집트, 신생독립국 등에 영향을 미쳤어. 약소국인 경우 스스로 결정한다는 게 국제사회에서 쉬울까?

호새:하루가 치열한 세상인데, 향후 어찌될까요?

돈키:글쎄, 너와 나로 구분되는 사회보다 융합사회야. 투게더 해야지. 아픔은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야. 내실을 기해야지. 

호새:큰 걸음 해야 되는 거네요?

돈키:큰 가슴으로 나서야지. 동네에서 나부끼던 태극기가 비행기, 상선, 나로호에 달려 태평양과 우주로 날고 있어. 3ㆍ1운동이 발생한지 백년이 지났어. 머리띠 풀어야 할 거야. 왼편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오른손을 얹는 것은 의미로운 거야. 인간 몸에 가장 소중한 자리에 오른손을 얹은 거잖아. 성경에도 오른손은 권능과 신뢰를 상징하거든. 

호새:그래서 공자는 수신제가해 달에 구름 가듯 두 손을 뒷짐 지나 봐요? 부처는 중관을 득해 알았다는 뜻으로 미소로 오른손 드는가요? 어려운 일이네요. 이웃사촌이 악수를 나누어야할 텐데요. 

돈키:이제 3ㆍ1정신은 미래를 밝히는 애국심이야.

호새:오른손을 얹으니 심장이 쿵쿵거려요!

경기도민일보, KGD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21-02-27 22:45:23
파리장서운동
유교계는 3ㆍ1운동보다 7년 앞서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대규모의 독립운동을 획책하다가 발각되어 많은 핵심 인물들을 잃은 바가 있었다. 1919년 기독계와 불교계가 주동한 가운데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유교계는 대대적인 장서운동을 일으켜 이에 호응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파리장서운동인데 137명의 유림 대표가 전문 2천 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게 된 것이다. 이 장서는 심산 김창숙이 짚신으로 엮어서 상해 임시정부로 가져갔다.

http://blog.daum.net/macmaca/3162

윤진한 2021-02-27 22:40:46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윤진한 2021-02-27 22:40:14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
* 참고자료.
1. Report 제목: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

윤진한 2021-02-27 22:39:17
성균관대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을 받아들여 항복한 후, 미군정당시 성균관을 복구시키로 법을 발효하여, 임시정부 요인들(고문:이승만.김구선생, 위원장:김창숙 선생)과 남북유림들이 모여 성균관에 대자를 더 붙여 성균관대를 설립(복구설립형식임)키로 결의하여, 성균관장이 성균관대신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여 국사로 가르치는성균관의 유일무이 최고대학자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1960년대 후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학교법인 성균관대와 달리 재단에 참여해 재단은 달라짐. 박정희 대통령때 시작된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한것

윤진한 2021-02-27 22:37:57
시대였습니다. 결국 천도교 및, 불교화 된 일본이 다시 들여온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을사조약이후 활성화 된 일본 불교계파(결혼하는 대처승려 한용운등의 불교계) 및 조선.대한제국이 종교적으로 인정할 수 없던 개신교측 인사들이 모여서 작성한 선언서로 끝나고 마는 3.1 독립선언서가 되는 시대적 상황을 나타내게 됩니다. 을사조약이후 불교 야사에 기반한 단군신앙의 대종교를 나철이 창시했는데, 유교국인 조선.대한제국 유림들이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기는 곤란하여, 서명은 하지 않고, 독립청원에는 찬성한다는 심정을 견지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한말 의병의 모태인 유림들은 별도로 파리장서 사건을 주동하고, 이일로 대거 투옥되었습니다. 대한제국 군인들이 해산당하여 독립군의 모태가되고,이시영.이회영 선생등이 독립군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