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노영희 “행복을 담는 그릇“
[수필] 노영희 “행복을 담는 그릇“
  • 노영희 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 승인 2021.02.0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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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일보』  오늘은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 날이다. 며칠 전 아래층으로 물이 샌다고 관리사무실로 신고가 들어와서 바닥공사를 하였다. 싱크대 아래 보일러 난방 배관이 새는 누수로 싱크대를 옮기고 싱크대 안의 물건을 모두 꺼내야 했다. 누수공사보다는 싱크대 안에 넣어둔 물건 꺼내는 일이 더 큰일이었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쌓인 그릇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그릇을 쟁겨놓았을까. 한숨부터 나왔다.

예전에는 동네 분들과 그릇계를 들거나 방문판매로 구입을 하였다. 동네 분들이 잘 모이는 집에 세트로 그릇을 풀어놓고 구경을 한 다음 판매를 하시는 분이 우리나라 최고의 도자기 그릇이라던가, 무공해 그릇이라던가, 신제품이라던가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서 할부로도 사고 계를 들어 구입하기도 했다. 예쁜 모양과 색에 홀딱 빠져서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별도 안하고 뿌듯한 마음 가득 안고 그러니까 과소비를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그릇을 바라보고 있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딸이 “엄마 이사 가요?” “이게 다 뭐예요?” 한다. 눈치를 챈 딸은 모두 버리고 언니가 명품이라고 사준 그릇만 남기고 다 버리자고 했다. 대답을 안 하자 딸은 꼭 필요한 그릇 몇 가지만 추려놓고는 고르라고 했다. “엄마, 나 시집가면 주려고 그러는 거지” 그러면서 웃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아래층 사시는 분이 타셨다. 무겁겠다하면서 내가 들고 있는 그릇을 보시더니 이 그릇을 장만할 때는 그릇도 재산이 된 것 같이 부자가 된 마음이었는데 하시면서 같이 아쉬워하셨다. 쓰레기 분리장에서 그릇을 내려놓고 있는데 “아줌마 그렇게 버리면 안 돼요. 마대로 된 쓰레기봉투 사오세요” 한다.

오래된 그릇을 쌓아두게 되는 것은 그릇에 담기는 정성스러운 음식과 보이지 않는 행복인 포만감을 주기 때문인가 보다. 그릇의 모양대로 담기는 행복은 마음으로 퍼 올리는 아름다운 시간을 담아두고 음식의 냄새를 기억하게 한다. 

그릇을 버리고 한동안 허전하고 쓸쓸했지만 남아 있는 그릇에 더 많은 정을 꾹꾹 눌러 퍼 담는 중이다.

경기도민일보, KG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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