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호태 시인, 한반도 소나타-돈키호태 유람50 ‘두만강 푸른 물 ’
[기고] 우호태 시인, 한반도 소나타-돈키호태 유람50 ‘두만강 푸른 물 ’
  • 우호태 시인
  • 승인 2021.01.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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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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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떠나간 그대는 어디로 갔소/그리운 내 님이여…” 1938년 대중에게 선보인 김정구 선생이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이야. 여섯 마디 넘은 분들은 귀에 익은 노래지.

호새:독립운동 하시느라 두만강을 건너간 임을 그리는 마음을 담았네요.

돈키:살아가며 가장 힘든 게 뭘 것 같아? 

호새:먹고 사는 게 제일 힘든 거 아닌가요?

돈키:그리움도 그 가운데 하나일거야. 내 노력으로 해소가 안 되니 말이지. 고향이든 연인이든 갈 수 있거나 볼 수 있다면야 뭔 문제야. 상사병은 약이 없어 무섭거든. 임을 보내고 얼마나 그리움이 크겠어. 이승에서 해소 못하면 영혼도 떠돌 거야.

호새:그 그리움이 삶의 버팀대 아닌가요?

돈키:경험한 분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

호새:백두산에 내린 빗방울이 한 방울은 압록강으로, 다른 한 방울은 두만강으로 흐르니 남해에서 만날 수 있겠죠. 

돈키:한 어미가 낳았으니 가능할 수 있을 거야.

호새:‘엄마 찾아 삼만 리’ 마르코 형제 물방울인가요? 시점을 고조선시대로 해볼까요? 상봉 시점을 언제로 하죠?

돈키:감상에 젖어서야 되겠어? 세상이 녹록치 않아. 훼방꾼이 많으니 길을 잃지 말아야지.

호새:두만강 하구 녹둔도도 잃어버린 땅이라는데…. 

돈키:인기리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 장군이 그곳 둔전관이었다지. 그때 여진족과 큰 싸움이 있었던 곳인데, 아편전쟁 후 맺은 1860년 청과 영ㆍ러ㆍ프랑스 3국과의 북경조약으로 안타깝게 러시아로 넘어갔어. 1430년 세종대왕이 6진을 설치하여 김종서 장군 주도로 개척된 조선 땅이었거든.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 후로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의 외교권 피탈, 1909년 간도협약에 의한 간도 상실, 결국 1910년 한일합방 조약으로 나라를 송두리째 잃었어.

호새:언제 찾은 거예요?

돈키:1945년 자력이 아닌 연합국에 의해 되찾았으니 광복이라는 거야. 시대변화에 둔한 우물 안 타짜들이 나라를 망친거야. 다행히 반쪽 땅에서 반세기만에 경제 10대국에 랭크되었으니 한강의 기적이지. 압록강 맑은 물도 흐르고 두만강 푸른 물에 설움을 띄워 지구촌에 나섰어. 또 다른 반세기에 큰 변화를 맞을 거야.

호새:동관진 구석기 유적지로 가보자구요. 사연이 많은 유적지라면서요?

돈키:일본이 만주공략을 위한 철도 부설공사 중 일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어. 자국을 위해 일본 학자들이 양심을 저버린 사례야. 그 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아시아민족관 조창수 학예관, 고려대 박물관장 김정학 교수, 충북대 이융조 교수, 이분들의 노력으로 한반도에 구석기 실존이 고증된 최초의 유적지야. 한반도에 인류역사의 물줄기가 섬나라 일본보다 앞선다는 큰 얘기거든. 

돈키:지난 20세기 한 세기 동안 한반도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할까? 어쩌면 1950년대 이후는 그 이전 흐트린 얼룩을 지우느라 지지고 볶은 시기야. 반세기만에 차오른 꿋꿋한 에너지가 또 한번 용트림으로 21세기 후반을 달구어야 할 텐데…. 

호새:종이배를 띄울까요, 종이학을 날릴까요? 동해바다에서 만나겠지요. 그 옛적 두만강을 넘나들며 나라를 품었던 분들을 뵙자구요. 

돈키:백성들이 일군 땅을 타짜들이 지키지 못했으니 발길들이 무거웠을 거야. 

호새:지난 추석 특집 ‘대한민국 어게인’ 쇼에서 가수가 말하드만요. 백성이 깨어야 나라를 지킨다고 말에요.

돈키:코로나로 이즘 가장들이 어깨가 시려.

호새:코리아 땅덩이 누가 떼어갈까요? 질주하려면 심장이 튼튼해야 하는데…. 

돈키:브레이크가 있어야 달릴 수 있는 거야. 

 

경기도민일보, KG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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