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호태 시인 ‘한반도 소나타-돈키호태 유람28’
[기고] 우호태 시인 ‘한반도 소나타-돈키호태 유람28’
  • 우호태 시인
  • 승인 2020.11.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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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태 시인
우호태 시인

백제왕도 공주에서

 

돈키:수백 년의 세월을 한나절 눈팅, 귀팅으로 참 어려운 일이지. 마음도 발길도 바쁘네. 부여나 이곳 공주도 최소 일주일 정도는 머물러야 깊은 맛을 느낄 거야. 

성 박사:세상을 놀라게 한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과 금강을 굽어보는 공산성이나 부여 국립박물관과 더불어 백제문화의 저장고 공주국립박물관, 백제 시조인 온조왕을 비롯한 웅진시대 왕들을 모신 숭덕전, 제민천이 흐르는 시내 거리, 공주감영 터, 하나둘 들어서는 한옥, 의미로운 역사를 지닌 교회와 성지 등 시가지와 어울린 여러 무늬를 살피면 대충 들어서는 게 있을 거야.

김 기자:좋은 역사공부가 되겠어요.

돈키:삼한 중에서 마한연맹체가 백제로 이어지고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하여 역사무대에서 사라졌어. 왜 그랬을까? 그 역사문화를 생활양식이나 유적, 유물을 통해서 살피는 것이 흥미롭잖아. 내 고향에도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과 사찰, 고분이 산재하거든. 정신적 귀향인 셈이야. 전문적인 것은 학자들 연구 내용을 살펴야겠지.  

성 박사:백제문화를 ‘검이불누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 하니 무령왕릉이 대표적 사례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4600여점의 유물이 공주 생활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 송산리 고분의 주인공을 가늠하는 지석은 백제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세력 분포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야. 강줄기는 어느 곳이나 인간의 생활 터야. 한반도 역사가 반만년이니 향후 구석기시대를 비롯한 큰 유물들이 지속해 발굴될 거야.

돈키:백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면 설이 분분하나 한강유역 한성(위례성)이나 금강유역의 공주 석장리, 나성리, 공산성, 부소산성이 대표적 사례지.

김 기자:무덤이 역사적 타임캡슐이네요. 

돈키:무령왕이 세상에 드러나 백제를 둘러싼 고구려, 신라, 왜, 남북조 등 주변과의 교류사를 설명하는 키를 건넸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 왜곡되기도 하나 무덤의 실체가 때론 이전 주장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하지. 흩어지거나 허술한 설들을 이어주는 중요 사료야.

성 박사:백제의 발길이 무령왕릉의 발굴로 남조시대 양나라, 왜 등 널리 교역한 사실이 밝혀져 백제를 포장하면 해양대국이었을 거야. 큰 나라였으니 바다 건너 동아시아 해상교류를 한 거야. 그 사료가 일본 열도나 중국 사료에 등장하거든. 향후 그 모습이 더욱 밝혀지겠지. 

돈키:백제는 한성에서 웅진, 사비로 천도하였으니 공주, 부여, 익산은 백제의 육상벨트요, 금강의 물길은 왜, 남북조까지 이어지는 수상벨트고 말이지. 발길을 이었다는 뜻이야. 백제가 망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보다 해양으로 진출한 백제의 개방성을 주목해야지. 웅진시대 계획도시 나성리를 살피면 이즘의 행정수도 세종의 한 자락이니 고대왕국 백제가 꿈꾸던 영화를 대신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도 아픔 속에 성장하듯 지역도 그렇잖아.

김 기자:백제는 ‘검이불누 화이불치’의 이미지를 남겼고 무령왕은 금동신발을 남겼어요. 

호새:주인님은 뭘 남기시려고요?

돈키:뭘 남겨! 그냥 쭈욱 가는 거야. 고 가수 최희준 선생이 그러지 않든.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초상이 나면 신고 가라는 건지 망자의 신발을 대문 밖에 두었어. 어릴 적엔 신발 멀리 벗어 던지기 놀이도 있었고 어떤 작가 분은 아홉 켤레의 구두(신발)로 소설을 썼드만. 산사람이나 망자나 신발, 발길의 의미는 큰 거야. 더구나 그 신발이 왕의 신발, 발길이라면 어떻겠어? 

김 기자:그래서 어떤 발길을 남기려고요?

돈키:글쎄, 마라톤이 취미니 백제왕도인 공주~부여를 잇는 ‘큰 물길 금강~백마강 마라톤’ 길을 달리고 싶은데. 

호새:내 ‘백마(白馬)’이니 내두 뛸라요.


 

경기도민일보, KG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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