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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옷 입은 눈사람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옷 입은 눈사람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1.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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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은 눈사람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겨울 안개가 자욱이 온 동네를 감싸 안았다. 얼굴에 스치는 서늘하면서도 촉촉한 물기가 마음을 포근하게 덥혀주었다. 희미한 가운데 사람들은 어디론가 힘차게 걷고 뛰며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고 떠났다.

가만히 있을 것 같던 우윳빛 물방울들은 건조해진 마음을 적셔주고 느긋하게 흐르면서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이른 추운 시간 온기를 느끼게 해줘서 출근길의 바쁜 마음을 조금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분명 앞서가는 사람이 있어도 안개에 가려진 모습을 바라보며 뒤따라갔다.

이러다 눈으로 오든가 비가 되어 내리면 어쩌나 하며 우산을 챙겨 올 걸 하고 걱정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안개를 헤집고 버스가 왔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차 안으로 올라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많은 사람이 안개에 잠겨 서있거나 걷거나 갈 곳을 가고 있다. 둥글고 커다란 형체가 안개에 가려지면서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 스쳐갔다. 눈사람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 눈이 하얗게 쌓여 순백의 나라처럼 온 동네가 눈에 파묻힌 것 같은 날은 아이들은 모두 집 밖으로 뛰쳐나와 눈사람을 만들었다. 손 안에 들어올 만큼 눈을 뭉쳐서 눈 위에 살짝 굴리면 눈이 공 같은 눈뭉치에 붙어서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 손이 시린지 발이 시린 줄 모르고 땀까지 흘려가며 굴리다보면 우리는 힘에 부쳐 쓰러질 것 같다. 커다랗고 둥그런 몸통이 만들어진다. 두 손으로 커다란 몸통을 두드리며 단단하게 눈과 눈이 붙도록 정성을 들인다. 다음엔 작은 몸통을 만들어 눈에 굴려서 토닥토닥 얼굴을 만든다. 

무거운 눈덩이를 힘을 내어 들어 올려 몸통 위에 올려놓는 것이 제일 어려운 과정이다. 오빠들을 불러내어 눈덩이를 올려 달라고 떼를 쓰면 오빠들은 싫다 하지 않고 들어 올려주면 눈사람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숯도 가져오고 솔가지도 잘라서 눈썹 위에 머리로 올려놓은 다음 여름에 아버지가 쓰시던 밀짚모자를 씌워주면 아주 멋진 큰 눈사람이 눈 위에 거인처럼 서있게 된다. 우리는 너무 기쁘고 좋아서 이리저리 뛰면서 눈싸움도 하고 미끄럼도 타면서 옷이 다 젖어 축축해 내복까지 젖어도 추운 줄 모르고 놀았다. 그 많은 눈이 온 다음날 혹한이 찾아와도 우리는 나가서 눈사람과 함께 놀았다. 그러다 목도리까지 가지고 와서 목에 둘러주었다. 

안개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짙어졌다. 아마 비구름이 몰려오는 듯했다. 잠시 추억 속에서 헤매던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안개가 눈이 되길 바랐는데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안개는 비에 눈에 녹듯 안개도 비와 함께 내려 흐린 날씨여도 안개가 걷히고 말았다. 

지나간 일들도 베일에 싸이듯 겹겹이 두꺼운 안개를 헤치고 걸을 때면 저 멀리에서 겨울에 대한 추억이 다가온다.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없지만 마음속에선 영원히 남아서 눈을 보면 눈사람이 생각나고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던 옛 추억에 사로잡힌다.

첫눈 오는 날 8개월 외손녀를 데리고 나와서 눈 구경을 시켜주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더니 안녕, 안녕 자그마한 손을 흔들었다. 방글방글 웃기까지 했다. 눈을 알아서 웃는 것은 아니겠지만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날씨가 추워 들어오면서 손녀의 손가락으로 쌓인 눈을 만져보게 했다. “눈이야, 만져 볼래” 그러나 눈에 손가락이 닿자마자 자지러지게 울어대었다. 차가움에 놀랐는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얼른 들어와서 달래주었다. 눈이 얼마나 예쁜지, 포근한지, 나비처럼 하늘을 날다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눈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무 어려 무서웠나보다.

내 마음에 남아있는 들판의 눈사람은 지금도 거기 있겠지. 겨울이 지나가도 녹지 않고 거대한 동상처럼 오가는 사람들에게 하얀 미소를 흘려주고 있을 거라 상상해본다. 오늘처럼 안개가 맴도는 날은 많은 눈이 내려 사람들의 마음을 하얗게 물들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그 자리에 눈사람이 있다면 춥지 않게 두꺼운 옷을 입혀주고 싶다. 어린 시절의 철없던 그때는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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