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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먼 산/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먼 산/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1.10 13:27
  • 수정 2023.01.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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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먼 산

올해는 제법 눈이 많이 왔다. 새벽 눈발이 날리면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흐려놓는 그 잔잔한 풍경을 보았다. 발자국이 찍히지 않을 정도의 적은 눈이지만 마음의 눈은 푹푹 발이 빠지는 눈길이 선명했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던 날씨도 눈이 내리면 포근해지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 쌓인 눈 위를 지나가며 눈을 비질하듯 쓸어다가 울타리 아래에 쌓아놓곤 하던 그 새털 같은 눈이 바람을 타고 내리고 있다. 불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달빛으로 뭉쳐진 아주 작은 덩어리로 온 동네를 하얗게 감싸고 있었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조용히 침묵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겨울 산에 눈이 쌓이면 더 추워 보이고 산등성이에 갈기처럼 서있는 나무들이 산 모양을 그려놓는다. 어두웠던 여름 산을 아주 속이 다 보이게 훤하게 솎아놓은 모습이다. 아련하게 마음으로 다가와 침묵과 함께하는 것이다. 추위를 못 참는 나도 먼 산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곤 했다. 마음이 시원하고 몸속을 얼게 했던 뭔가가 빠져나가며 따뜻해짐을 느낀다. 

눈 덮인 겨울 산이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안개 피어오르는 아득한 시선 속에 보이는 횅한 산이 좋아져서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을 바라보며 마음이 멍해져서 바람 든 무처럼 되기도 한다. 여러 생각이 오락가락 드나든다. 수많은 추억과 옛이야기들이 빠져나오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 순간의 나를 산이 잡아준다고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해서다.

눈이 녹아내리며 골짜기를 향하여 흐르는 눈물을 보면 맑고 영롱하기까지 하다. 골짜기와 넓게 만나는 계곡의 많은 물을 겨울이 얼려 놓았다. 그래도 물은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 많은 잎을 떨구어내고 맨몸으로 산꼭대기에 서있는 나무의 뿌리를 생각해 본다. 바위틈 어디에나 실핏줄처럼 언 땅 아래에서 아기의 손처럼 촉촉한 힘을 심어놓고 있는 건 아닐까. 높고 험한 바위틈이나 흙속에서 생명을 저장해 두고는 자신들을 지키고 있다.

누군가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받기도 한다. 칼바람을 맞으며 견디어내는 나목과 별빛과 달빛이 싸늘함을 더하지만 아침의 햇볕에 이어지는 석양의 따뜻한 긴 꼬리에 내일을 꿈꾸는 것이리라. 산이 잠들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이른 초저녁의 어둠 속에 묻혀가고 있다. 산 아래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를 제일 먼저 듣고는 묻어두는 것이리라.

때때로 겨울 같은 마음이 수시로 드나드는 차가운 바람을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기란 어렵지만은 않다. 산을 지탱해 주는 나무의 뿌리는 숲을 빠져나와 눈으로만 바라보는 헛헛 마음을 사방으로 흩트려준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난 볼 수 있으니까.

밤하늘 수많은 별은 다 숨어버리고 새벽은 오는데 눈 덮인 산을 오르고 싶지만 그리움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서있었다. 

먼 산, 먼 그리움에 오늘도 나는 계절을 잊고 꿈길을 걷고 있다. 바라보이는 저 산의 이름을 맨 먼저 지어주고 싶어서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백야와 오로라를 보고 싶어 안달했던 지난날처럼 얼어버린 까치밥을 올려다본다. 높은 저 산꼭대기를 하얗게 덮은 눈이 머릿속을 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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